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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발렌타인데이 유래, St. Valentine's Day 의 유래가 궁금하신가요?

이제 곧 2023년의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옵니다. 발렌타인데이는 2월 14일로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간에는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주는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문화는 일본의 제과업체의 판촉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에 불과하다고 상업적이면서도 왜색이 짙은 문화이기에 기피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일까요?

 

발렌타인데이 유래

 

발렌타인데이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발렌타인데이 또는 성 발렌티누스(성 발렌타인) 축일 Saint Valentine's Day (영어), festa di san Valentino(이탈리아어)은 초기 기독교 사제였던 발렌티누스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국국어원의 지정 표준어는 "밸런타인데이"이지만, 보통 "발렌타인데이"라고 부릅니다.

 

발렌타인데이는 매년 2월 14일에 기념하며 토요일이나 일요일과 겹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평범한 평일입니다.

발렌타인데이에는 연인들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서양에서는 특정 성별 및 연애와 관련 없이 초콜릿과 선물을 주기도 하며 한국 또한 연인이 아닌 친구나 직장 동료들끼리 초콜릿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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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발렌타인데이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의미가 가장 크겠습니다.

 

발렌타인데이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3가지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1. 성 발렌타인의 처형일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역사학자들은 발렌타인데이의 기원을 로마 시대로 추정합니다. 원정을 떠나는 병사들의 결혼을 금지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에 반대한 사제 발렌타인이 처형된 270년 2월 14일을 기념하면서 생긴 날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는 원정 전쟁에 징집한 병사들이 직전에 결혼을하게 되면 사기가 떨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남겨진 연인에 대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몸을 사리게 되어 결국은 전쟁이 패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결혼하지 못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발렌타인 신부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의 결혼을 몰래 허락하고 주례를 서주었다가 명령을 어긴 대가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사제 발렌타인이 순교한 날을 축일로 정해 해마다 애인들의 날로 기념해 오다 오늘날의 발렌타인데이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2. 새들이 교미를 시작하는 날에서 시작됐다.

2월 둘째 주부터 새들의 짝짓기가 시작한다고 믿었던 서양의 속설이 결합한 풍습이라고 주장입니다.

 

19세기 접어들면서 발렌타인 데이 축제가 지속되지 않던 유럽에서 유일하게 발렌타인 데이 출제를 계속 한 나라가 바로 영국이었습니다. 이 축제가 계속 이어지게 된 데에는 영국 문학의 두 거장이 버팀목이 되어줬기 때문입니다.

 

바로 초서와 셰익스피어였습니다. 1382년경에 작품인 초서의 [새들의 의회(The Parliament of Fowls)]와 셰익스피어의 1594년경의 작품인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은 발렌타인 데이, 즉 2월 14일에 짝짓기를 하는 새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발렌타인데이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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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학적으로는 새들의 생채 리듬은 양력보단 음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새들의 교미하는 날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주장을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3.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의 발렌타인 초콜릿 광고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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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모로조프 제과가 발행한 발렌타인 초콜릿 신문 광고

서양의 발렌타인데이 풍습은 20세기 초반에 일본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을 통해서 일본 내에서 서양 문물에 밝은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에 맞춰 1936년 고베의 "고베 모로조프 제과"라는 곳에서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발렌타인 초콜릿을 전합니다"라는 이벤트를 발렌타인데이에 맞춰 시행함으로써 발렌타인데이의 판촉 목적인 "초콜릿을 전달하는 이벤트"의 유래가 됩니다.

 

하지만 당시의 이 판촉 행사는 서양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에 성공하지 못한 마케팅이었습니다.

 

- 여성이 남성에게 주는 문화를 정착시킨 메리 쵸코

발렌타인데이 유래
메리 쵸코의 초콜릿

전쟁 후 일본 안에서는 성양 문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발렌타인데이가 깊숙히 침투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장을 노리고 1958년 도쿄 아오야마에 있던 "메리 쵸코"라는 양과자점에서 '메리의 발렌타인 쵸코'라는 상품을 만들어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을 중심으로 판매를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팔린 초콜릿을 단 3개뿐이었습니다.

발렌타인데이 유래
일본기념일협회 - 메리쵸코를 발렌타인 초콜릿 문화의 창시자로 공인

이에 낙심한 메리 쵸코는 남녀가 서로 선물을 주고받을 때 대부분 선물을 받는 쪽은 여자고, 선물을 주는 쪽은 남자라는 점에서 역발상 마케팅을 시도합니다. 바로 "발렌타인데이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에요!"라고 마케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도로 초반보다는 초콜릿 판매가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지만, 획기적인 인기를 형성하지는 못했습니다. 

 

- 발렌타인 초콜릿, 여성해방 운동으로 널리 알려졌다.

195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확대된 여상 해방운동인 "우먼 리브 운동"은 1963년에 일본에 상륙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남녀 차별이 매우 심하고 가부장적인 사회였는데, 196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지던 전공투 운동의 영향으로 일본의 여대생들 사이에서는 페미니즘이 크게 퍼집니다.

 

페미니즘이 퍼지면서 "여자도 적극적으로 남자에게 선물을 주고 고백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에 힘이 실렸고,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 발렌타인 초콜릿이 당시 전공투 운동과 우먼 리브 운동의 영향을 받은 신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195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발렌타인 초콜릿을 상업적으로 판촉한 곳은 모리나가 제과로 발렌타인 데이 판촉 행사에 대기업이 처음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발렌타인데이에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문화가 일본의 모리나가 제과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와전된 것입니다.

 

1960년대 발렌타인 초콜릿은 대중적인 문화가 아니었으며, 일본의 초콜릿 소비는 1968년에 정점을 찍고 급감하여 1970년대 초반까지는 발렌타인 초콜릿이 딱히 대중적으로 정착되지 않았습니다. 발렌타인 초콜릿이 대중화 된 것은 1970년대 중반입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발렌타인데이 판촉 행사 기간에 팔리는 초콜릿의 양이 1년 동안에 판매되는 초콜릿의 1/4에 이른다고 합니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어느 유래가 진짜인지는 역사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모든 주장들을 한 번씩은 알아두시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를테면 발렌타인데이에 연인에게 전해줄 카드에 간추려 적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연인끼리 초콜릿을 전해주는 것도 좋지만, 최초의 발렌타인 데이처럼 부모와 자녀, 친구 등 서로에게 사랑과 감사를 담은 카드와 작은 선물을 교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1910년 2월 14일)이기도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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